2007년 05월 16일
기억도 오늘의 삶도 담지 못하는
[건축리뷰] 동대문운동장 디자인타운 건립 계획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다 보면 잊혀진 과거로부터 기적처럼 다시 태어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점차 잊히고 작아지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반전이 있는 미래형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화려한 날을 보낸 쓸쓸한 뒷모습의 과거형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공간 중 동대문운동장이 이와 같은 분기점에 와있지 않을까?
역사적 사건과 상처를 논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동대문운동장의 활용범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활용범위의 축소에 따라 그 위상도 줄어들어 2006년 12월에는 Design World Plaza 건립계획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시민공모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공원과 디자인 콤플렉스가 결합된 디자인 타운'을 건립한다는 것. 이제 동대문운동장에는 새로운 공간의 기억이 이식될 것이다.
지금 동대문운동장 부지에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성곽 약 250m가 있었다. 적의 방어를 목적으로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雉) 2개소와 성 밖으로 물이 빠져나가도록 만든 이간수문(二間水門)도 있었는데, 동대문운동장 조성으로 철거되었으다. 조선시대 군사 훈련과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下都監)과 훈련원(訓練院)터 일부도 부지 내에 있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터에 현재의 동대문운동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8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1925년 10월15일이다.
당시 지금의 동대문운동장터에 조성된 건축물의 이름은 ‘경성운동장’. 경성부 토목기사 오모리의 설계로 경성부가 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옛 훈련원 터 2만2700평에 15만5천원을 들여 지었다. 당시 <경성일보> 1925년 5월30일자에는 “운동장이 완공되면 1)고시엔(甲子園)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경기장이 된다”고 적고 있다. 축구장이 일제 때인 1926년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고, 1934과 1936년에는 뒤쪽에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만들어졌으며, 야구장은 1959년에 건립되었으며 축구장은 1968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육상경기까지 할 수 있는 메인 스타디움으로 거듭났다. 동대문운동장은 말 그대로 종합운동장이었다.
규모가 확대되는 한편 몇 차례의 개명도 있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해방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운동장은 경기장이 아닌 대규모 군중이 모여드는 집회 장소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3상 회담으로 촉발된 찬탁과 반탁 논란 집회와, 1946년 노동절 집회, 좌절과 회한 속에서 숨진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1984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명칭이 변경된다. 서울을 대표하는 운동장의 위치에서 ‘동대문’이라는 서울의 특정 장소로 한정된 이러한 명칭 변경은 기능의 축소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위용에 걸맞게 지어진 운동장 뒤편의 수영장, 테니스장은 이미 없어져 맨발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축구장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면서 거대한 주차장과 청계천 복원으로 자리를 옮겨온 노점상들의 난전으로 용도 변경하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위상으로 보면 동대문운동장의 모든 것이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시는 동대문 운동장 철거를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의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철거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올해 11월에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는 대신 대체 야구장을 건립한다는 조건으로 야구위원회와 합의가 체결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 야구협의회, 소프트볼협회 등 10여 개 야구 단체에서는 서울시의 조건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현대사의 굴곡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이 ‘용도’에 한정된 주체와의 일방적 의사 체결로 소멸의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절차임에 틀림없다.
이제 계획대로라면 현재의 동대문운동장에는 '자연친화적인 공원‘과 ’디자인 콤플렉스가 결합된 디자인 타운'이 들어설 것이다. 가로를 활용하는 보행자에게 풍요로운 공원으로의 Urban Open Space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것과 패션타운으로 성장한 시장의 모습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도심 속의 학교 운동장이 그러하듯, 이전 할 미군기지의 거대한 공간이 그렇듯, 동대문 운동장 또한 그 자체가 서울의 도심에 남겨져 있는 가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평면적으로 비워진 공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열어주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테지만 ‘사라짐’ 말고는 대안이 없는지 모르겠다.
동대문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성곽의 흔적이 있을 것이고 훈련도감의 역사도 있으며 운동장으로서, 집회장소로의 기억이 많은 이에게 남아있고 북적거리는 거리가 떠오르는 동대문시장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와 기억을 지우고 들어서는 새로운 공간에는 디자인과 소비만을 수렴하는 ‘패션’이라는 키워드와 거대한 시장의 성장에 걸맞은 ‘디자인 콤플렉스’가 필요하다는 의지만이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는 공간을 지배하는 동대문시장이 작동하는 근원과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는 모습이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는 동대문시장은 소량 다품종 생산과 소비의 고리가 근거리 범위 내에서 혈액순환과 같이 얽혀있고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현재의 거대 쇼핑몰의 탄생도 바로 그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대문시장은 몇 개의 거대한 섬으로만 머물지 않고 가로가 북적이는 장소가 되었던 것은, 비록 현재 밀집한 쇼핑몰이 야기하는 공급과잉으로 휘청이는 상황이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단일 품종의 자기 완결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획-생산-판매-소비의 전단계의 구조가 확연히 들어 나 있다. 도소매의 긴밀한 연계, 생산과 판매의 네트워크, 사람의 발길을 잡는 노점이 그렇다. 동대문운동장이 이곳을 만들고 거니는 이들에게 돌려지기 위해서는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담아야 한다면 지나친 괴변일까?
시간에 따른 장소성과 역할, 새로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공간과 거리는 동대문운동장이 변화해야만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이러한 현재의 요구만이 아니라 시간의 레이어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이 정체성을 규정하고자 하는 공간에는 시간의 적층이 담겨지고 고려되야 한다. 최근의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라는 단어로 한정되어 논의되는 모습에는 아쉬움이 많다.
서울시는 마치 여러 가치들을 고려하는 듯 공표하고 있으지만 마치 백지 계획하듯 철거 일정을 내걸고 있는 것은 상반되는 모습이다. 현재의 것을 폐기한다는 것을 전제하기보다 가치 있는 공간으로 재생되기 위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공간이 새로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없애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미 우리주변엔 소중한 공간이 허망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그 정도면 기억에 대한 안일한 태도의 상처치고 충분하지 않을까? 흔적을 담아내어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기 위하여 노아의 방죽을 짓는 것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반복’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어떻게 새로이 할 것인가라는 데에서 분명한 고민의 ‘차이’가 있다. 미래의 이곳이 세상에 당당히 설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길 원한다면 우선 바로 현재 이곳에서부터 제대로 설수 있어야 한다.
동대문운동장의 역할이 줄어들어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 거리에는 주변의 커다란 변화에 맞추어 거리의 역할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공간이 용도의 지배에서 벗어나 주변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알아야 본질적 가치를 알 수 있고 가치를 고려함으로서 긍정적 실천을 담보할 수 있다. 질문해본다. 동대문운동장은 진정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진정 이 공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변해야 하는 모습을 내걸고 변화시키기보다 변화하고 있는 이곳의 기억과 가치를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고시엔(甲子園) : 1924년 개장한 야구장. 한신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전국고교야구대회의 본선이 개최되는 장소이다. 전국고교야구대회가 개최되는 기간에는 한신타이거즈가 타구장에서 홈경기를 진행할 정도로 일본에서의 역사와 문화적 상징성이 강한 야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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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MKtype | 2007/05/16 20:39 | 트랙백(1) | 핑백(2) | 덧글(3)




